어떤 자리는 끝나고 나서도 질문이 남는다.
지난 모임의 주제는 'AI 시대의 법'이었다. 변호사들이 모여 AI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법무법인과 협업하고 있는 마케터로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AI로 인해 생긴 이 고민들이 법조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계속 느꼈다. 변호사 자리에 마케터를, 서면에 콘텐츠를 대입하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1. AI를 마주한 변호사들 — 지금 어디쯤 있나
모임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변호사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각자가 걸어온 길은 달랐다. 그리고 같은 'AI를 쓰고 있다'는 말도 결이 달랐다.
누군가는 여러 AI 도구를 이것저것 써보는 중이라고 했다. 탐험한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어떤 도구가 실제로 믿을 만한지 아직 확신이 없고, 환각(Hallucination) 문제가 여전히 걸린다. 그래서 이 자리에 참여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변호사는 끝났구나 싶어서, 어떻게들 사시려나 싶어서요."
또 다른 분은 AI 툴들을 써 보며 탐색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변호사들이 자기와는 다르게 Hallucination 걱정 없이 호쾌하게 AI를 쓰는 모습에 오히려 당황했다고 했다. 이 분은 AI가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다 고민한 분이기도 했는데, 주니어 변호사 한 명이 경찰관직으로 이직했는데, 이유가 AI였다는 것.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며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조금 다른 포지션도 있었다. 법조계 특화된 AI 솔루션들이 오히려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면서, 결국 "프롬프트(지시 사항)를 잘 쓰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AI가 문제가 아니라 프롬프트가 실력이 된다는 얘기다.
이 자리가 흥미로웠던 건, 참가자들 모두 'AI를 잘 쓰고 있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쓰면서 불안하고, 탐색하면서 확신이 없고, 그래서 모인 자리였다. 그게 오히려 진짜 현실 같았다.
2. 어떻게 살아야 할까 — 대체냐 재편이냐
"그래서 변호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질문으로 넘어가면서 대화의 온도가 달라졌다.
분쟁과 소송 영역은 변호사의 가치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입장이 있었다. 갈등은 논리만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가가 낮아질 수는 있어도, 감정과 관계가 얽힌 분쟁을 AI가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었다.
반면 더 냉정한 전망도 나왔다. AI끼리 대화하기 시작하면 감정노동마저 대체될 수 있다고. 변호사가 쓰는 글은 개인적 색채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영역이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AI가 치고 들어오기 더 쉬운 구조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맞긴 하겠지만, 억울하진 않겠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체념이 아니라 현실 인식처럼 들렸다.
기술 현장에서 온 목소리는 달랐다. 기술은 막을 수 없고 속도는 계속 빨라진다. 2~3주 단위로 디벨롭이 이어진다. 그 흐름에서 '피할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이 방향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게 낫다고 했다. 실제로 AI로 콘텐츠를 제작해보면 클라이언트가 오히려 좋아한다고. AI가 First Option이 되고, 그다음 보완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이미 일이 재편되고 있다는 현장 이야기였다.
세 개의 입장이 하나의 결론으로 모이지는 않았다. 그게 솔직한 자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건 법조계만의 질문이 아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나도, 브랜드 마케팅을 하는 사람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3. 결국 어디로 가나 — AI 시대, 인간의 자리
대화는 점점 거시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기술이 좋아진다고 해서 세상의 본질이 빠르게 바뀌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다. 전쟁은 여전히 존재하고, 인간의 갈등 구조는 생각보다 느리게 변한다.
그 말을 받아친 목소리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무섭다. 활이 죽이는 것보단 드론이 더 무서운 것처럼." 본질이 안 바뀌어도, 도구가 달라지면 결과의 규모와 속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양극화 이야기가 나왔다. AI로 인한 빈부격차가 봉건시대처럼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만 남고, 그 사이의 과정은 다 사라진다는 그림. 앱의 종말, 필요한 걸 바로 결과로 내놓는 구조로의 전환.
그 흐름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 하나가 있다.
"피학습 대상으로서의 나를 거부한다."
누군가 던진 이 말이 한동안 공중에 떠 있었다. AI는 우리의 콘텐츠를, 우리의 판단을, 우리의 언어를 학습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데이터가 된다. 이것을 그냥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저항할 것인가. 러다이트 운동처럼 기계를 부수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고유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욕망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트렌드는 사람의 욕망대로 흘러간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남의 욕망을 욕망한다. AI가 만들기 쉽게 만들어주는 건 그 모방을 더 가속시킨다.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아닐까.
이 자리에서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질문들이 남았다.
변호사는 '법률 판단의 실행자'에서 '법률 시스템의 감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기획 의도처럼, 모든 실무자에게 비슷한 전환이 요구되는 것 같다. 실행하는 사람에서, 맥락을 짜고 판단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그 전환의 전제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은 회색이 많은 영역이다. 하지만 그 회색 속에서 자기 질문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질 것이다.
46번째 RSV Talks 후기. AI 시대의 법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AI 시대의 사람을 이야기한 밤이었다.